국문초록
한국 소설가 박완서와 캐나다 소설가 앨리스 먼로의 작품에 등장하는 돌봄제공자 여성인물들은 스스로가 ‘정상’ 혹은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자의식에서 기인한 수치심으로 고통 받는다. 이들이 수행하는 돌봄의 형태는 사회적으로 기대되는 이상적인 모습이 아닌 지극히 현실적이고, 때로는 문제적인 양상으로 드러나는데, 주목할 만한 사실은 바로 이 면모 때문에 수치심의 정동 역시 날 것 그대로 발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돌봄제공자에게도 돌봄이 필요하다. 이 당연한 사실을 증명하듯 박완서와 앨리스 먼로의 소설은 돌봄제공자와 돌봄수혜자 간에 존재한다고 으레 착각되는 허구의 경계를 무화시킨다. 과도한 양의 책무와 함께 수치심에 시달리며 몸도 마음도 기진맥진 지쳐버린 와중에도 헌신적으로 돌봄을 수행하는 소설 속 여성인물들의 모습이 돌봄제공자와 돌봄수혜자 간의 경계를 흐릿하게 한다. 두 소설가는 우리 모두가 돌봄수혜자이며 돌봄은 어느 특정한 개인에게 필요한 것이 아닌 우리 모두의 일이라는 인식을 통해 돌봄에 대한 논의를 더욱 풍부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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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작가는 인간의 취약성에 대해 인정하고 공감하고 발화하며 이 도전에 소설이 가장 적합한 영역임을 증명한다. 소설쓰기가 바로 박완서와 앨리스 먼로 식의 도덕적 실천이다. 이는 말하기가 곧 도덕적 실천이 될 수 있다고 보았던 푸코의 논의가 소설을 통해 실현된 사례이다. 박완서와 앨리스 먼로는 각자의 방식으로 돌봄에서 맞닥뜨리게 되는 타인의 고통에 대한 우리의 연민이 종종 다른 감정과 섞여버린다는 사실도 주저 없이 이야기한다. 이러한 현실적 접근 덕택에 두 소설가의 이야기는 돌봄을 둘러싼 현재의 윤리적 논쟁에 크게 기여할 것이다.